Treg 발견 이후 – 두 개의 전혀 다른 질문
시몬 사카구치가 조절 T세포(Treg)를 제시했을 때, 그 발견의 1차적 의미는 분명했습니다.
면역계에는 단순히 공격하는 세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멈추게 하는 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발견은 곧 두 개의 서로 반대 방향 질문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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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억제 시스템이 너무 약하면 무엇이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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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 억제 시스템이 너무 강하면 무엇이 일어나는가?
이 질문은 각각 자가면역 질환과 암이라는 전혀 다른 질병 영역으로 이어졌습니다.
1. Treg 결핍의 얼굴: 자가면역 질환
Treg 연구의 초기 임상적 연결고리는 자가면역 질환이었습니다.
스컬피 마우스와 IPEX 환자가 보여준 극단적 표현형은 하나의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Treg가 없거나 기능하지 않으면, 면역계는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이후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에서 공통된 패턴이 관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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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g 수의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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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g 억제 기능의 질적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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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P3 발현 불안정성
류마티스 관절염, 전신홍반루푸스, 다발성경화증, 1형 당뇨병 등에서 Treg는 더 이상 주변적인 세포가 아니었습니다. 질환의 중심 병태생리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치료 전략이 도출되었습니다.
자가면역 질환은 면역을 억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Treg를 회복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면 가장 생리적인 치료가 될 것이다.
2. 자가면역 치료 전략으로서의 Treg
이 관점에서 등장한 전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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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용량 IL-2를 이용한 선택적 Treg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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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외에서 Treg를 증식시켜 주입하는 세포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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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P3 안정성을 높이는 분자 타깃 접근
특히 저용량 IL-2 치료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IL-2는 원래 T세포 활성화 인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Treg가 IL-2 의존성이 가장 높은 세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용량에 따라 전혀 다른 면역 효과를 유도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접근은 “무차별 면역억제”가 아니라, 면역 조절의 복원이라는 새로운 치료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3. 반대편의 질문: 암에서 Treg는 무엇을 하는가
그러나 Treg 연구는 곧 또 다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암 조직을 분석해보니, 예상과 다른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종양 미세환경에는 Treg가 과도하게 축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의미심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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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주변에서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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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특이 T세포가 존재함에도 암이 제거되지 않는 이유
그 답 중 하나가 바로 Treg였습니다.
즉, 암은 면역계를 피하는 데 Treg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 암 면역치료로의 전환: Treg를 ‘억제’해야 하는 이유
이 인식은 암 면역치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기존의 암 치료가 면역을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새로운 전략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면역을 자극하기 전에,
먼저 면역 억제의 브레이크를 풀어야 한다.
이 사고 전환은 면역관문억제제(checkpoint inhibitor)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CTLA-4와 PD-1은 단순한 억제 수용체가 아니라, Treg 기능과 깊게 연결된 분자였습니다.
특히 CTLA-4는 Treg의 핵심 억제 기전 중 하나로 작동합니다.
CTLA-4 억제제가 효과를 보인 이유는 단순히 효과 T세포를 활성화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종양 미세환경에서 Treg의 억제력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점점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5. 성공과 대가: 면역 관련 부작용의 등장
암 면역치료의 성공은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한 환자들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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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성 장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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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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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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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하수체염
이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Treg의 억제 기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킨 결과, 자가면역 질환과 유사한 상태가 유도된 것입니다.
이 부작용들은 Treg가 평상시 우리 몸에서 수행하던 역할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6. 하나의 발견, 두 개의 치료 축
이제 Treg 발견의 의미는 명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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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 질환에서는 Treg를 늘리고 강화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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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서는 Treg의 기능을 차단하거나 회피해야 합니다
같은 세포, 같은 분자, 같은 기전이
질병에 따라 정반대의 치료 전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는 면역학 역사에서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하나의 개념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임상 전략을 양분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결론 – Treg는 면역의 스위치였다
Treg의 발견은 단순히 새로운 T세포 아형을 추가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면역계를 “켜는 시스템”에서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의한 사건이었습니다.
암과 자가면역이라는 두 극단의 질환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면역의 브레이크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밟을 것인가?
Treg는 그 질문에 대한 생물학적 해답이었고,
현대 면역치료는 지금도 그 브레이크의 미세 조정을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레퍼런스
- Sakaguchi S. et al., J.Imm. (1995)
https://pubmed.ncbi.nlm.nih.gov/7636184/ - Brunkow M.E. et al., Nat Genet (2001)
https://pubmed.ncbi.nlm.nih.gov/11138001/ - Sakaguchi et al., Cell (2008)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92867408006247?via%3Dihub - Fontenot JD et al., Nat Immunol (2003)
https://www.nature.com/articles/ni904 - Sharma P & Allison JP, Science (2015)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a8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