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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드러난 단서: 바루크 블룸버그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견

호주 원주민 혈청 연구에서 출발해 B형 간염 바이러스와 백신 개발로 이어진 바루크 S. 블룸버그 박사의 연구 여정을, 특히 호주 현지 연구의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질병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서 출발한 연구입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의학자 바루크 S. 블룸버그(Baruch S. Blumberg) 박사는 특정 질병이 왜 어떤 인구 집단에서는 더 흔하고, 다른 집단에서는 드문지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바이러스나 세균 자체보다도, 인류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가 질병 민감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블룸버그는 세계 여러 지역의 혈청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혈액은행, 병원, 연구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인종과 질병군의 혈액을 모았고, 특히 반복적인 수혈을 받은 혈우병 환자들의 혈청을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다회 수혈을 통해 환자의 몸속에 본래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외래 단백질, 즉 항원이 축적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환자들의 혈청에는 그러한 항원에 대응하는 항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호주 원주민 혈청에서 나타난 예상치 못한 반응입니다

이 연구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1963년 무렵, 블룸버그 연구팀은 뉴욕의 한 혈우병 환자 혈청을 실험 패널로 사용해 여러 지역 혈청과의 항원–항체 반응을 조사하던 중, 유독 강한 침강 반응선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문제의 표본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호주 원주민(Aboriginal Australians)의 혈액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블룸버그는 이 항원을 연구 기록상 임시로 ‘호주항원(Australia antigen)’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단순했지만, 이 발견은 이후 감염병 연구의 흐름을 바꾸는 단서가 됩니다. 당시만 해도 이 항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질병과 관련 있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실험실을 떠나 호주 현장으로 향합니다

호주항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블룸버그는 실험실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직접 서호주 지역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며, 원주민 공동체와 의료기관을 통해 더 많은 혈청 샘플을 수집·분석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호주는 단순히 ‘표본의 출처’가 아니라, 연구가 실제로 확장된 중요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호주에서 수집된 혈청을 포함해 다양한 인구 집단을 비교 분석한 결과, 호주항원은 특정 인종에만 국한된 특이 단백질이 아니라, 여러 집단에서 관찰될 수 있는 항원이지만 분포 양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발견은 호주항원이 유전적 표지이거나 환경 요인과 연관된 생물학적 신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블룸버그가 이 시점까지도 B형 간염의 원인을 찾겠다는 목표로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나중에 회고에서, 자신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혈청 다형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으며, 특정 질병을 겨냥한 계획된 탐색이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수혈 환자와 간염을 잇는 실마리입니다

연구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임상 관찰과 데이터가 겹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블룸버그 팀은 호주항원이 자주 발견되는 대상이 다량의 수혈을 받은 환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혈우병 환자, 지중해 빈혈 환자, 일부 혈액질환 환자들에게서 호주항원 양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블룸버그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호주항원이 혈액 보존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일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수혈을 통해 전달되는 어떤 감염 인자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었습니다. 점차 후자의 가설이 더 설득력을 얻었고, 연구의 초점은 호주항원과 바이러스성 간염의 관계로 이동하게 됩니다.

호주항원과 간염의 연결이 확인됩니다

1966년 이후, 연구팀은 급성 간염 환자의 혈액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급성 바이러스성 간염 환자에게서 호주항원이 자주 검출되며, 증상이 회복되면 항원이 사라지는 경향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호주항원이 질병 과정의 일시적 표지일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결정적인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1967년, 연구실에서 호주항원 분리 작업을 수행하던 한 여성 기술자가 자신의 혈청을 검사한 결과 약한 양성 반응을 보였고, 며칠 뒤 실제로 황달과 함께 급성 간염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은 호주항원이 급성 간염의 조기 표지자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 기록됩니다.

블룸버그 팀은 이러한 관찰을 종합해 1967년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초기에는 학계의 반응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간염의 원인을 둘러싼 주장이 이미 여러 차례 번복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검증과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정체입니다

블룸버그의 가설은 곧 국제적으로 검증됩니다. 일본 도쿄대의 오코치 가즈오 교수 연구팀은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호주항원과 동일한 항원을 발견했고, 이를 수혈 실험과 역학 분석으로 확인했습니다. 호주항원이 포함된 혈액이 실제로 수혈 후 간염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제시되면서, 두 항원은 동일한 존재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 호주항원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표면항원(HBsAg) 으로 규명되었습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약 42nm 크기의 구형 입자로, 외피에 HBsAg를 과잉 발현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백신 개발과 세계 보건에 남긴 영향입니다

호주항원의 발견은 곧바로 실질적인 보건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블룸버그와 동료 어빙 밀먼은 1969년 최초의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했고, 이후 혈액 검사법과 백신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재조합 백신이 도입되며 전 세계적으로 예방접종이 가능해졌고, 만성 B형 간염과 간암 발생률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이 공로로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한 데 그치지 않고, 수혈 안전성 확보, 백신 개발, 감염병 예방이라는 현대 공중보건 체계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생일인 7월 28일이 ‘세계 간염의 날’로 지정된 것도 이러한 공헌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호주 연구가 남긴 의미입니다

돌이켜보면, B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의 출발점에는 호주 원주민 혈청이라는 예상치 못한 단서와,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가 현장으로 향한 선택이 있었습니다. 블룸버그의 연구는 목표 지향적 탐색이 아니라, 열린 질문과 현장 중심 연구가 어떻게 의학사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문헌

  1. Blumberg, B. S. Australia antigen and the biology of hepatitis B. Science, 1977.

  2. Prince, A. M. An antigen detected in the blood during the incubation period of serum hepatitis. PNAS, 1968.

  3. Okochi, K., Murakami, S. Transmission of serum hepatitis by inoculation of Australia antigen–positive blood. Vox Sanguinis, 1969.

  4. NobelPrize.org.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76 – Baruch S. Blumberg.

  5. Blumberg, B. S. Hepatitis B and the prevention of cancer: a personal memoir. Cancer Research,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