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왜 세 명이었는가 – Treg와 FOXP3의 완성된 퍼즐

조절 T세포(Treg) 연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왜 시몬 사카구치의 단독 수상이 아니었을까. 그 과학적·역사적 이유를 Treg–FOXP3 연구의 구조 속에서 살펴봅니다.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왜 세 명이었는가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왜 시몬 사카구치(Shimon Sakaguchi)가 단독 수상자가 아니지?" "Treg은 시몬 사카구치가 다 밝혀 놓은 것 아냐?"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youtube에도 어떤 사람은 이번 노벨상의 99%의 업적은 시몬 사카구치가 한 것이고 나머지는 숟가락만 얹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 Treg)를 처음 개념화하고, 그 기능을 실험적으로 증명했으며, 2003년에는 FOXP3가 Treg의 핵심 전사인자임을 입증한 인물이 바로 사카구치이기 때문입니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그의 업적만으로도 노벨상 단독 수상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Treg–FOXP3 연구의 전체 구조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이번 수상이 사카구치 단독이 아니라 브렁카우(Brunkow)와 램스델(Ramsdell)을 포함한 공동 수상으로 귀결된 이유는 매우 명확해집니다. 이는 ‘업적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퍼즐이 완성된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1. 사카구치의 축: ‘현상’을 발견한 사람

1990년대 초반 면역학의 주류 패러다임은 중앙 관용(central tolerance)이었습니다.
자가반응 T세포는 흉선에서 제거되며, 말초에서는 별도의 적극적 억제 기전이 필요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사카구치는 CD4⁺ T세포 중 CD25⁺ 세포 집단을 제거하면 마우스에서 전신성 자가면역이 폭발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세포 아형의 발견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말초 면역계에는 반드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브레이크’가 존재한다.

이는 면역학의 개념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강한 회의도 뒤따랐습니다. CD25는 활성화 T세포의 표지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 세포들이 정말 독립된 억제 세포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카구치는 실험적 증거를 축적하며 Treg라는 현상적 실체를 확립했습니다. 이것이 Treg 연구의 첫 번째 축이었습니다.


2. 스컬피 마우스: 분자적 단서를 제공한 또 하나의 축

한편, 전혀 다른 경로에서 연구되던 모델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컬피(scurfy) 마우스입니다.

스컬피 마우스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습니다.

  • CD4 T세포의 통제되지 않은 증식

  • 전신 장기에서 치명적인 염증

  • IL-2 신호 축의 이상

  • X-염색체 연관 유전 양상

이 표현형은 사카구치가 관찰한 Treg 결핍 모델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습니다. Treg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소수 연구자들에게 스컬피 마우스는 사실상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활성 조절 실패가 아니라, 조절 시스템 자체가 붕괴된 상태다.”

중요한 점은, 스컬피 마우스를 연구하던 연구자들 역시 이미 이것이 면역 억제와 CD4 T세포 조절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사카구치의 연구와는 다른 축에서, 동일한 결론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3. 2001년 FOXP3 발견: 분자적 조절인자등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1년이었습니다.
브렁카우와 램스델은 스컬피 마우스와 인간 IPEX 환자를 분석해, 두 치명적 자가면역 질환이 모두 FOXP3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의 의미는 단순한 유전자 발견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다음을 동시에 의미했습니다.

  • 스컬피의 치명적 면역 폭주는 특정 유전자 하나로 설명된다

  • 인간과 마우스에서 동일한 조절 면역 결함이 존재한다

  • ‘조절 면역’을 규정하는 분자적 핵심이 존재한다

Treg 연구자들에게 이 결과는 거의 정답에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수년간 추적해 온 조절 T세포의 본질이 바로 이 유전자일 수 있다”는 강력한 가설이 성립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부터 FOXP3–Treg 연결은 창조적 비약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연구 경로가 되었습니다.


4. 2003년의 동시 수렴: 개인의 업적을 넘어선 완성

2001년 FOXP3가 등장하자, 사카구치뿐 아니라 여러 Treg 연구 그룹이 동시에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 FOXP3를 발현시키면 Treg 기능이 생기는가

  • FOXP3가 없으면 Treg는 존재할 수 있는가

  • FOXP3는 어떤 전사 프로그램을 규정하는가

그리고 2003년, 놀랍게도 거의 같은 시기에 세 그룹의 결정적 논문이 발표됩니다.

  • 사카구치 그룹: FOXP3 과발현으로 Treg 기능 획득

  • 루덴스키 그룹: FOXP3 결핍 시 Treg 발달 불가

  • 램스델·지글러 계열: FOXP3가 효과 T세포 사이토카인 프로그램을 억제

이 동시성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FOXP3–Treg 연결은 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불연속적 발견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이 성숙하면서 필연적으로 도달한 결론이었다는 점입니다.


5. 왜 노벨상은 세 명에게 돌아갔는가

노벨위원회의 선택은 이 연구사의 구조를 정확히 반영합니다.

  • 사카구치는 Treg라는 ‘현상’을 발견하고 면역학의 지형을 바꾸었습니다.

  • 브렁카우와 램스델은 스컬피–IPEX–FOXP3라는 분자적 연결고리를 제시했습니다.

  • 2003년의 결정적 연구들은 단일 인물의 성취가 아닌, 공동의 수렴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수상은 누가 더 많은 일을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축을 완성했는가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즉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시몬 사카구치가 없었어도 이미 스컬피 마우스가 면역억제와 관련되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고, 연구결과로 작용기전에서 핵심인 전사인자를 밝혔기 때문에 오히려 Treg 세포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단독 수상이 아니었던 이유

Treg–FOXP3의 연결은 사카구치만의 직관적 도약이 아니라,
여러 연구자가 서로 다른 축에서 접근하며 완성한 하나의 구조물입니다.

사카구치는 퍼즐의 첫 조각을 놓았고,
브렁카우와 램스델은 그 퍼즐을 붙잡을 수 있는 분자적 손잡이를 제공했으며,
여러 연구자들이 함께 말초 면역관용이라는 새로운 지도를 완성했습니다.

그 축적된 흐름 전체가 바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세 명에게 돌아간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