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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 ‘기적의 약’이 세대의 상처가 되기까지

임신 합병증 예방제로 널리 쓰였던 DES가 왜, 어떻게 ‘대표적 약물 재난’으로 기록되었는지를 시간 순서로 정리합니다.

프롤로그: 희망의 약이 ‘비극의 씨앗’이 되기까지

디에틸스틸베스트롤(Diethylstilbestrol, DES)은 1938년 영국에서 합성된 비(非)스테로이드성 합성 에스트로겐입니다. 당시 의학계는 이 물질을 “호르몬을 약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시대적 기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임신 유지와 관련된 문제, 즉 유산과 조산을 줄일 수 있다는 믿음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DES는 ‘임신을 지키는 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부터 1971년까지 DES가 임산부에게 널리 처방되었습니다. 1947년에는 유산 예방 목적이 포함된 허가가 이루어졌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임신부와 태아가 장기간 노출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효과가 확실한가”와 “장기적으로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지금만큼 엄격하게 다뤄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DES처럼 많은 회사가 광범위하게 생산·유통하던 약물은, 한 번 임상 관행에 들어가면 관성적으로 처방이 유지되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이 느슨한 확신의 시간은, 훗날 ‘잠복기가 긴 약물 재난’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옵니다.

1부: 경고는 있었지만, 처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DES가 널리 쓰이던 시기에도 효과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초기 연구는 과학적 엄밀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고, 1950년대에는 더 통제된 형태의 연구에서 “유산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반복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처방은 쉽게 줄지 않았습니다.

이 간극은 단순히 한 연구의 문제라기보다, 의학이 새로운 약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미 널리 퍼진 신념, 처방의 관성, 시장의 논리, 그리고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과학적 증거보다 앞서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처럼 불안을 자극하는 영역에서는, ‘예방’이라는 말이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갖기도 합니다.

규제의 흐름도 복잡했습니다. 1951년 FDA가 임신 중 DES 사용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산 예방으로 판매하기 전 제조사가 별도의 절차를 완료하도록 요구하는 장치를 중단했다는 기록은, 제도적 판단이 어떻게 의료 현실을 밀어주는지 보여줍니다.

2부: 젊은 여성들에게서 나타난 ‘너무 이른 암’

1960년대 후반, 보스턴 지역 의료진은 이상한 패턴을 마주합니다. 보통은 나이가 든 연령대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질 및 자궁경부의 투명세포 선암(Clear Cell Adenocarcinoma, CCA)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에게서 연속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희귀암”이라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올 만큼, 이 조합은 흔치 않았습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의 아서 L. 허브스트(Arthur L. Herbst) 박사와 동료들은 이 사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환자 개인의 생활습관이 아니라, 환자들이 태아였던 시기의 공통 환경이 무엇인지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사 끝에 한 가지 공통점이 떠오릅니다. 환자들의 어머니가 임신 중 DES를 복용했다는 사실입니다.

1971년, 허브스트 연구팀은 DES 노출과 젊은 여성의 CCA 발생 사이의 연관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임신 중 약물 복용이 자녀에게 수십 년 뒤 암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가능성을 의학계에 정면으로 던졌습니다.

여기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시간’입니다. DES는 1940년대부터 임신부에게 쓰였는데, 그 결과가 10년 이상 지나서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약물이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발달 과정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성인이 된 이후 암이나 생식기 이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은, 약물 안전성의 시간 축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3부: 1971년의 경고, 그리고 뒤늦은 중단

NEJM 발표 이후 FDA는 1971년 임산부에게 DES를 처방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립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멈췄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때까지 얼마나 오래 사용되었는가”입니다. 이미 수많은 임신부와 태아가 노출된 뒤였습니다.

임신부 처방은 중단되었지만, DES는 한동안 다른 적응증으로도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DES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endocrine-disrupting chemical)로 분류되며, 호르몬 체계에 영향을 미쳐 암과 발달 이상을 유발할 수 있는 대표 사례로 언급됩니다.

이 사건이 규제 역사에 남긴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약이 시장에 나온 뒤에도 장기 부작용을 추적하는 체계, 즉 시판 후 감시(post-market surveillance)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입니다. DES는 “출시 전에 다 확인했으니 괜찮다”는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습니다.

4부: ‘DES 세대’가 겪은 일은 암 하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DES의 영향은 특정 희귀암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DES 사건이 상징적인 이유는, 생식기 발달, 임신·출산, 암 위험, 그리고 장기 건강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DES 딸들: 희귀암과 생식·임신 문제의 동시 충격

DES 딸들은 노출되지 않은 여성에 비해 CCA 위험이 크게 증가합니다. 다만 절대 위험은 여전히 낮아, 대략 1,000명 중 1명 수준으로 설명됩니다. “드문 암이지만, 분명히 늘어난다”는 점이 DES의 공포를 더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또한 DES 딸들에서는 불임 위험이 높아졌다는 장기 추적 결과도 보고되어 왔습니다. 암 위험 역시 CCA에만 머물지 않고, 나이가 들면서 유방암 위험이 다소 증가할 수 있다는 결과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DES 아들들: 남성에게도 남은 발달의 흔적

DES 아들들에 대해서는 잠복고환 등 생식기 이상과 관련된 보고가 축적되어 왔습니다. 개인별 영향은 다양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태아기 호르몬 환경이 남녀 모두의 발달 경로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DES 어머니들: ‘복용한 세대’의 위험도 남습니다

임신 중 DES를 복용한 어머니들에서도 유방암 위험 증가가 보고되어 왔습니다. 즉, DES는 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용자 본인의 장기 위험과도 연결되어 논의됩니다.

다음 세대: ‘손주’ 영향은 왜 논쟁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까요

DES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일부 연구에서 다음 세대까지의 영향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영역은 표본과 추적 기간, 교란 요인이 복잡해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래서 “가능성이 제기되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형태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5부: 피해자들의 조직, 법의 변화, 그리고 ‘시스템이 배운 것’

DES는 의학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였습니다. 노출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설명해야 했고, 의료진은 새로운 지식을 따라잡아야 했으며, 제도는 뒤늦게 책임의 틀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피해자 지원과 정보 제공을 위해 DES Action USA 같은 조직이 등장했고, 1978년을 기점으로 전국적 활동이 본격화됩니다.

법적 영역에서는 또 다른 난제가 있었습니다. DES는 여러 회사가 같은 제형으로 생산했고, 당시 약국 조제 방식 때문에 “내가 복용한 DES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를 특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1980년 Sindell v. Abbott Laboratories 판결에서 ‘시장 점유율 책임(market share liability)’이라는 논리를 통해 중요한 전환점을 맞습니다. 피해자가 특정 제조사를 지목하지 못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에 비례해 책임을 묻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말해주는 바는 단순합니다. 약물 재난은 “약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의학·규제·법·윤리가 동시에 흔들리는 사건이 된다는 점입니다.

에필로그: DES가 남긴 가장 불편한 질문

DES는 의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약물 사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약이었고, 널리 처방되었으며,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심각한 결과가 드러났고, 그 영향이 개인을 넘어 가족과 사회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DES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남깁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만으로 약을 널리 쓰기 시작할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안전하다”는 말은 언제, 어떤 근거로 할 수 있는가. DES는 그 질문을 아주 비싼 대가로 남긴 사례입니다.


참고문헌

  1. Herbst AL, Ulfelder H, Poskanzer DC. Adenocarcinoma of the vagina. Association of maternal stilbestrol therapy with tumor appearance in young women.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1971.

  2. National Cancer Institute. Diethylstilbestrol (DES) Exposure and Cancer. (Fact Sheet, 2025-01-31 업데이트).

  3. National Academies / NCBI Bookshelf. DES Case Study (Women and Health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