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구실에서 시작된 조용한 혁신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신약 개발은 여전히 우연과 경험에 크게 의존하는 분야였습니다. 그러나 뉴욕 북부 터카호에 있던 버로우스 웰컴 연구소의 작은 생화학 부서에서는 전혀 다른 접근이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조지 히칭스는 질병을 생화학적 경로의 문제로 이해하고, 그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분자를 설계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상을 실제 약물로 구현해 낸 인물이 바로 거트루드 엘리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협력은 이후 ‘합리적 신약 설계’라는 개념으로 정리되며, 현대 약학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기회가 거의 없던 여성 과학자의 출발점입니다
거트루드 엘리언은 리투아니아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일찍부터 과학에 재능을 보였고, 화학에 강한 열망을 품고 성장했습니다. 헌터 칼리지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그녀 앞에는 높은 벽이 놓여 있었습니다. 15곳이 넘는 대학원 박사과정 지원에서 모두 탈락했고, 연구직 자리조차 쉽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때는 슈퍼마켓 상품관리자로 일하며 연구와 멀어질 뻔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전환점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였습니다. 전쟁으로 남성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여성에게도 제한적으로 과학 연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언은 식품회사와 제약회사의 임시직을 거쳐 1944년, 마침내 버로우스 웰컴 연구소에 합류하게 됩니다. 당시 연구 책임자였던 히칭스는 엘리언의 학위보다 능력과 태도를 보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이 만남은 엘리언 개인의 경력을 넘어, 신약 개발사 전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합리적 신약 설계라는 새로운 길입니다
히칭스와 엘리언이 집중한 대상은 핵산 대사였습니다. DNA와 RNA를 구성하는 퓨린과 피리미딘의 합성 경로를 면밀히 분석하면, 정상 세포와 암세포, 혹은 병원체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암세포가 빠른 분열을 위해 핵산 합성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 주목했고, 그 과정을 방해하면 선택적으로 세포 증식을 멈출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접근은 무작위적 화합물 탐색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분자의 구조를 이해하고, 효소와 기질의 관계를 가설로 세운 뒤, 그 가설에 맞는 화합물을 하나씩 설계하고 시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엘리언은 수많은 퓨린 유도체를 합성하고 실험하며, 효과와 독성 사이의 미세한 균형을 찾아 나갔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그녀는 실험실에서 손을 놓지 않았고, 이 끈질긴 과정이 항대사제 계열 항암제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6-머캅토퓨린의 탄생과 ‘관해’라는 단어입니다
1950년대 초, 히칭스와 엘리언의 연구는 결정적인 결실을 맺습니다. 여러 퓨린 유사체 가운데 하나였던 6-머캅토퓨린은 이전 화합물들보다 독성이 낮으면서도 백혈병 세포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특성을 보였습니다. 이 약물은 체내에서 퓨린 합성 경로를 방해함으로써 DNA와 RNA 생성을 지연시키고, 특히 빠르게 분열하는 백혈병 세포의 증식을 멈추게 했습니다.
임상시험 결과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6-머캅토퓨린을 투여받은 소아 급성 백혈병 환자들에서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는 관해가 관찰되었고, 이는 “백혈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기존 인식에 균열을 냈습니다. 1953년, 이 약물은 소아 백혈병 치료제로 공식 승인되며 임상 현장에 도입되었습니다. 비록 단독 투여만으로 완치를 보장하지는 못했지만, 관해라는 개념을 현실로 만든 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병용요법과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6-머캅토퓨린의 한계 역시 곧 드러났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일시적인 관해 후 재발을 경험했습니다. 엘리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약물의 체내 대사와 작용 경로를 더 깊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메토트렉세이트 같은 다른 항암제와 병용할 경우 치료 효과가 크게 향상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복합 화학요법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했고, 소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치료 성적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오늘날 소아 백혈병 완치율이 80%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 토대에는 6-머캅토퓨린과 항대사제 연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엘리언의 연구는 단일 약물의 성공을 넘어, 치료 전략 전체를 바꾼 사례로 평가됩니다.
노벨상과 여성 과학자의 상징적 의미입니다
히칭스와 엘리언의 협력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면역억제제 아자치오프린과 통풍 치료제 알로퓨리놀 같은 약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들은 1988년,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업적을 “기초 생화학적 이해를 토대로 신약을 설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했습니다.
엘리언의 수상은 특히 상징적이었습니다. 박사학위 없이, 산업계 연구소에서 평생 연구를 이어간 여성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사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의미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엘리언은 실험과 데이터로 자신의 자리를 증명했고, 그 결과는 수많은 환자의 생존으로 이어졌습니다.
남아 있는 유산입니다
6-머캅토퓨린은 지금도 소아 백혈병 유지요법의 핵심 약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언과 히칭스가 개척한 합리적 신약 설계 방식은 이후 항암제, 항바이러스제, 면역억제제 개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연이 아닌 이해와 설계로 약을 만든다는 이들의 철학은, 현대 의약화학의 기본 전제가 되었습니다.
거트루드 엘리언의 이야기는 한 여성 과학자의 성공담을 넘어, 과학이 어떻게 사회적 장벽을 넘어 인류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문헌
- Nobel Prize.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88 – Press Release.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1988/press-release/
- Burchenal, J. H. et al. (1953). Clinical evaluation of a new antimetabolite, 6-mercaptopurine, in the treatment of leukemia and allied diseases. Blood. https://pubmed.ncbi.nlm.nih.gov/13105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