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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배리 마셜의 자가실험이 바꾼 위궤양의 상식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여겨지던 위궤양이 감염병이라는 관점으로 전환되기까지, 호주 연구자들의 발견과 마셜의 자가실험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프롤로그: “위궤양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상식의 시대

한동안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은 스트레스, 자극적인 음식, 과도한 위산 같은 ‘생활 요인’이 만든 질환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위 안은 강산성 환경이니 세균이 살기 어렵고, 따라서 궤양은 감염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의료 현장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치료 역시 제산제와 위산 억제제, 식이조절, 스트레스 관리가 중심이었고, 재발이 반복되면 수술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이 상식을 뒤집은 전환점은 호주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병리학자의 집요한 관찰과, 한 젊은 임상의의 무모할 만큼 과감한 선택이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시작된 관찰: 로빈 워런의 “이상한 나선”

1970년대 말, 호주의 병리학자 로빈 워런(Robin Warren)은 위 생검 조직을 보며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패턴을 발견합니다. 위 점막의 특정 부위에서, 나선형에 가까운 세균이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세균이 ‘아무 데서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염증 소견이 있는 위 점막에서 더 자주 보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문제는 다음 단계였습니다. “보인다”에서 “증명한다”로 넘어가려면 임상 데이터와 배양, 그리고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워런은 동료들에게 말을 꺼냈지만 반응은 차가웠고, 이 관찰을 함께 밀어붙일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운명적 협업: 배리 마셜과의 만남

이 무렵 위장관 분야를 순환하던 젊은 의사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이 워런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역할도 달랐습니다. 워런은 표본을 통해 ‘조용히’ 반복해서 확인하는 사람이었고, 마셜은 임상 현장과 연구를 ‘크게’ 연결해 결론을 끌어내려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이 손을 잡자 속도가 달라졌습니다. 환자의 위 조직에서 특정 세균이 반복해서 관찰되고, 궤양 환자에게서 더 자주 나온다면, 이건 ‘부수적 동반자’가 아니라 ‘원인 후보’일 수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난관: “배양이 안 됩니다”

당시 결정적인 난관은 배양이었습니다. 위에서 보이는 세균을 실제로 길러야 연구가 진도를 나가는데, 표준 실험 관행으로는 배양 접시를 며칠 지나 버려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균은 그 속도 자체가 달랐습니다.

전환점은 우연처럼 찾아옵니다. 휴일 때문에 접시가 더 오래 방치되었고, 그 결과 늦게 자라는 균의 집락이 확인됩니다. “세균이 느리게 자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구는 갑자기 현실적인 길을 얻습니다. 이제는 관찰이 아니라 ‘실험’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의학계의 벽: “위에 세균이 산다고요?”

발표는 쉽지 않았습니다. 위궤양이 감염으로 생긴다는 주장은 당시 기준에서 지나치게 파격적이었습니다. 기존 패러다임은 위산과 생활 습관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었고, 거대한 치료 시장도 그 틀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젊은 연구자가 내민 결론은 종종 “상식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상식에 대한 모욕”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마셜은 점점 더 분명해지는 데이터를 손에 쥐고도, 사회적·학술적 설득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때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지금도 논쟁과 충격을 동시에 불러오는 ‘자가실험’이었습니다.

1984년 7월 10일: 마셜이 직접 마신 이유

1984년 7월 10일, 32세의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배양액을 직접 마십니다. 그는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염 → 염증”의 시간적 순서를 자신의 몸에서 보여주려 했습니다. 즉, ‘건강한 위’에 균이 들어가면 실제로 위염이 생기는지를 눈앞에서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실험 전 내시경으로 위 점막 상태를 확인했고, 며칠이 지나면서 복부 팽만감과 식욕 저하, 뚜렷한 구취 같은 변화를 겪습니다. 이어진 내시경에서 급성 위염 소견과 균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세균이 위에서 살 수 없고 위염과 무관하다”는 주장에 균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후 그는 항생제(및 관련 약제)로 치료를 받으며 회복합니다.

이 자가실험은 결과만 놓고 보면 단순합니다. 그러나 의미는 거대합니다. 위궤양을 둘러싼 논쟁이 ‘취향과 생활습관’의 영역에서 ‘감염과 제균’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10년의 기다림: 공식 합의가 나오기까지

자가실험이 모든 논쟁을 즉시 끝내주지는 못했습니다. 의학은 한 번 바뀌기 시작하면 빠르지만, 바뀌기 전까지는 매우 느립니다. 그래도 임상시험과 역학 연구가 축적되면서 흐름은 점차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199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합의 회의에서 등장합니다. 소화성 궤양 치료에서 핵심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진단과 제균이라는 방향이 공식적으로 정리되며, “재발을 반복하는 만성질환”이라는 시선이 “치료 가능한 감염성 질환”이라는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2005년 노벨상: 호주 연구가 세계의 표준이 되다

2005년, 배리 마셜과 로빈 워런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합니다. 수상 이유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발견과, 위염 및 소화성 궤양에서의 역할을 밝혀낸 공로였습니다. 호주에서 출발한 관찰과 집요한 설득이, 결국 세계의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은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셜이 대중 매체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소개되면서 비교적 친숙한 학자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다만 그의 핵심 업적은 어디까지나 “궤양의 원인에 대한 관점 전환”과 “제균 치료의 표준화”에 있습니다.

오늘의 의미: 치료가 달라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발견 이후, 궤양 치료는 ‘증상 완화’에서 ‘원인 제거’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위산 억제제에 더해 항생제를 포함한 제균 치료가 정립되면서, 많은 환자에서 재발 위험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으로 보이던 궤양이 “치료를 통해 정리할 수 있는 병”으로 설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단순히 “세균이 원인이었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익숙한 상식이 너무 견고할 때, 과학은 데이터를 쌓아 결국 그 틀을 바꿉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무모한 용기가,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1.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2005: Barry J. Marshall & J. Robin Warren. NobelPrize.org.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05/summary/
  2. NIH Consensus Development Panel. Helicobacter pylori in peptic ulcer disease. JAMA. 1994;272(1):65–69. https://pubmed.ncbi.nlm.nih.gov/8007082/
  3. Marshall BJ. Helicobacter pylori: a Nobel pursuit? (자가실험 회고 포함). PMC.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2661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