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전후 영국, 일상 속에 숨은 위협
1950년대 초 영국 사회는 전쟁의 상처를 딛고 빠르게 재건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활기가 돌아왔고, 담배는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중년 남성의 대부분이 흡연자였고, 담배는 긴장을 풀어주고 건강에도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온한 풍경 뒤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관찰되고 있었습니다.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결핵을 제치고 주요 사망 원인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과거에는 드물게 보이던 질병이 갑자기 증가하자, 의학계는 그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 채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는 이 문제를 단순한 임상 경험이 아니라, 체계적인 통계와 인구 연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통계연구부서에 조사가 의뢰되었고, 이곳에서 두 연구자, 리처드 돌과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이 만나게 됩니다.
두 연구자: 다른 배경, 하나의 문제의식
리처드 돌은 1912년 런던에서 태어난 의사로, 전쟁 중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통계와 역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개별 환자의 사례보다, 집단 전체에서 나타나는 패턴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찾는 데 매력을 느꼈습니다. 전쟁 후에는 MRC 통계연구부서에 합류해, 데이터를 통해 질병을 이해하려는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은 한 세대 위의 인물로, 이미 의학 통계학 분야에서 명성을 쌓고 있던 학자였습니다. 그는 무작위 대조시험이라는 개념을 체계화하며, “어떤 증거가 인과관계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평생 붙들고 있었습니다. 힐은 숫자를 다루는 기술자라기보다, 데이터가 의미를 갖기 위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상가에 가까웠습니다.
이 두 사람은 폐암 증가라는 하나의 질문 앞에서 협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현대 공중보건의 방향을 바꾸는 연구로 이어집니다.
첫 번째 접근: 사례–대조 연구라는 선택
1948년, 돌과 힐은 런던의 여러 병원을 중심으로 폐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비교하는 사례–대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구 대상은 폐암 환자 600여 명과, 나이와 성별을 맞춘 대조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기 오염, 도로 타르,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산업화 요인이 의심되었습니다.
그러나 분석이 진행될수록 한 가지 요인이 반복해서 눈에 띄었습니다. 폐암 환자의 거의 대부분이 흡연자였고, 흡연량이 많을수록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경향이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1950년에 발표되었고, 담배와 폐암 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존재함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만으로 모든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흡연이 원인인지, 아니면 폐암에 걸릴 소인이 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돌과 힐 역시 이 한계를 잘 알고 있었고, 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정적 전환점: 영국 의사 코호트 연구
돌과 힐은 보다 확실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을 비교하는 대신, 아직 질병이 없는 집단을 장기간 추적해 흡연 여부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관찰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연구가 바로 ‘영국 의사 연구’입니다.
1951년, 영국 전역의 등록된 의사들에게 흡연 습관을 묻는 설문지가 발송되었습니다. 수만 명의 의사가 응답했고, 이들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추적 관찰되었습니다. 연구진은 흡연 여부, 흡연량의 변화, 사망 원인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며 시간을 쌓아갔습니다.
몇 년 뒤 공개된 초기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사망률이 높았고, 그 차이는 특히 폐암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흡연과 폐암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흡연량이 많을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용량–반응 관계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연구의 힘은 시간에 있었습니다. 흡연이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질병과 사망이 따라왔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확인되면서,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축적되었습니다.
방법론의 의미: 왜 이 연구가 결정적이었는가
영국 의사 연구는 단지 담배의 위험성을 밝힌 연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는 전향적 코호트 연구가 질병 원인을 밝히는 데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노출이 먼저이고 결과가 나중이라는 시간적 순서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인과관계 논의의 기준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 경험은 힐이 훗날 정리한 ‘브래드퍼드 힐 기준’으로 이어집니다. 강도, 일관성, 시간적 선후관계, 용량–반응 관계와 같은 개념은 이후 역학 연구 전반에서 인과성을 판단하는 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항과 변화: 과학이 사회를 설득하는 데 걸린 시간
돌과 힐의 결과가 곧바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담배 산업은 다른 환경 요인을 원인으로 제시하며 반박했고, 흡연은 오랜 문화이자 산업이었기에 사회적 저항도 컸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데이터는 점차 논쟁의 여지를 줄여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돌 자신이 연구 결과를 접한 뒤 흡연을 중단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는 단지 학문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 개인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중보건의 전환점으로 남다
영국 의사 연구는 이후 전 세계 담배 규제 정책의 과학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담배 경고 문구, 광고 제한, 공공장소 금연 정책은 모두 이러한 연구 결과 위에서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흡연이 평균 수명을 크게 단축시키며, 흡연자의 상당수가 흡연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는 인식은 이 시기부터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돌은 생애 말년까지 연구를 이어가며 수십 년에 걸친 결과를 업데이트했고, 힐은 인과 추론의 원칙을 정리해 후대 연구자들에게 기준을 남겼습니다.
결론: 데이터가 바꾼 상식
리처드 돌과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의 연구는, 익숙한 일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드러낸 사례입니다. 그들은 단순한 직관이나 도덕적 주장 대신, 장기간에 걸친 관찰과 엄격한 방법론으로 사회적 상식을 바꾸었습니다.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을 밝힌 이 여정은, 과학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과 공공 정책을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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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ical Trial Service Unit & Epidemiological Studies Unit (CTSU). British Doctors Study. https://www.ctsu.ox.ac.uk/research/british-doctors-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