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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는 왜 박멸될 수 있었을까: 백신의 역사와 인류 최초의 성공 사례

인류가 유일하게 박멸한 바이러스 천연두와 백신의 탄생, 그리고 박멸이 가능했던 과학적 조건을 정리합니다.

인류를 위협해 온 바이러스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인간이 완전히 박멸한 바이러스는 단 하나, 바로 천연두입니다. 그렇다면 왜 천연두만이 예외적으로 박멸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은 백신의 역사와 인류 보건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됩니다.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완전 박멸’

천연두는 수세기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고열과 전신 통증, 그리고 피부에 남는 심각한 농포성 발진은 생존자에게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시력 손상을 남겼습니다. 사망률은 평균 30%에 달했으며,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막대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유럽인과의 접촉 이후 천연두가 확산되면서 원주민 사회는 급격한 인구 붕괴를 겪었고, 이는 역사적·문명사적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두는 인류 역사상 자연 상태에서 완전히 사라진 최초의 전염병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의학적 성취를 넘어, 과학과 국제 협력이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천연두는 얼마나 치명적이었을까

천연두는 variola virus에 의해 발생하며, 주로 비말을 통해 전파됩니다. 감염 초기에는 발열과 두통이 나타나고, 이후 전신에 특징적인 발진이 생깁니다. 이 발진은 농포로 진행된 뒤 딱지로 변하며, 깊은 흉터를 남깁니다.

가장 치명적인 형태인 Variola major는 평균적으로 감염자 10명 중 3명이 사망하는 매우 위험한 질환이었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매년 수백만 명이 감염되었고, 생존자 중 상당수는 실명이나 중증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백신이라는 개념의 탄생

1796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중요한 관찰을 하게 됩니다. 우두에 걸린 젖 짜는 여성들이 천연두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8세 소년에게 우두 물질을 접종했고, 이후 천연두에 노출시켜 면역이 형성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실험은 세계 최초의 예방 접종으로 기록되며, 여기서 백신이라는 개념이 탄생합니다. 백신이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vacca에서 유래했으며, 제너는 이 방법을 vaccination이라 명명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예방 접종을 개발하면서, 제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접종법 역시 백신이라 부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백신은 특정 질병을 넘어, 예방 접종 전반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와 천연두 박멸 전략

20세기 중반,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 박멸을 목표로 한 국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는 무차별 대량 접종이 아닌, 감염자 주변 접촉자를 집중적으로 추적해 접종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식은 제한된 자원으로도 효과적인 확산 차단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1977년 소말리아에서 보고된 알리 마아오 말린의 감염 사례를 끝으로 자연 감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며, 1980년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의 전 세계적 박멸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천연두만 박멸이 가능했던 이유

천연두의 박멸은 우연이 아니라, 몇 가지 결정적인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첫째, 천연두는 인간만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였습니다. 동물 저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 사이의 전파만 차단하면 바이러스의 생존 경로 자체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증상이 매우 뚜렷해 감염자를 쉽게 식별하고 격리할 수 있었습니다. 무증상 감염이 거의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셋째, 비교적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백신이 존재했으며, 감염력 자체도 홍역이나 인플루엔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천연두 발생률을 빠르게 낮출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천연두는 정말 끝났을까

자연 상태의 천연두는 사라졌지만, 바이러스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일부 고보안 연구시설에는 연구 목적의 바이러스 샘플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생물안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천연두 백신은 전통적인 생백신으로, 극히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이나 사망 사례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는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한 예방 접종이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면역저하자에게는 접종이 특히 위험할 수 있어, 사전 예방 차원의 전면 접종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천연두 백신과 Mpox의 관계

천연두 백신은 Mpox에 대해서도 높은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바이러스는 같은 Orthopoxvirus 속에 속해 있어, 한쪽에 대한 면역이 다른 쪽에 대해서도 교차 보호 효과를 나타냅니다.

과거 아프리카 지역 연구에서는 천연두 백신 접종자가 Mpox에 대해 약 85%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최근 Mpox 유행 상황에서도 천연두 백신의 활용 가능성이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천연두의 박멸은 단순한 과거의 성공 사례가 아닙니다. 그것은 과학, 신뢰, 그리고 국제 협력이 결합될 때 인류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감염병에 직면한 우리는 이 역사에서 여전히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1. World Health Organization, Smallpox eradication and its legacy

  2. CDC, History of Smallpox and Smallpox Vaccine

  3. Fenner F. et al., Smallpox and Its Eradication, WHO